귀 관련 질환을 앓았던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화가들

여러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았던 예술가 중 대표적인 화가들이 귀와 관련한 질환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물론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세계적인 유명 배우나, 가수, 정치인, 스포츠스타 등 많은 예술인들이 귀 관련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고, 이로 인해 난청으로 고생하였고, 보청기를 통해 극복했던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다음에서는 현,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안중호교수가 2018년 대한청각학회 웹진12호에 소개했던 내용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흔히들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업적을 세운 분들은 그 업적 자체만으로도 칭송 받지만, 그들이 처한 불운했던 상황과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존경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 미술 등의 예술인들 중에서도 개인적인 아픔, 즉 신체적인 불구나 질환으로 그들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나, 오히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더욱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남긴 분들이 있는데, 이들 중 대표적인 이비인후과 질환을 앓았던 화가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들 중 한 명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흔히들 고흐는 측두엽 간질 환자였습니다.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어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부정하는 논문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는데요. 이들 중 하나인 JAMA에 실린 "Van Gogh had Menière's disease and not epilepsy. JAMA, 1990 Jul 25;264(4):491-3”에서 저자들은 고흐가 생전에 가족과 친구들과 주고 받은 796통의 편지를 분석했는데, 그는 지속적으로 심하게 반복되는 어지럼을 호소하였으며, 그 당시 Prosper Meniere가 기술한 메니어 병이 그 당시 까지만 해도 뇌전증으로 오진 되었다는 점을 들어 고흐는 정신분열병이나 뇌전증이 아닌 내림프 수종에 의한 메니에르 병 환자일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흐의 편지를 보았을 때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데 오히려 그가 지속적으로 받았던 정신 분열증 치료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져 갔다고 하는 군요.

 

1889년 1월 유명한 '귀 자해 사건이 일어난 후 생폴 병원에 환자로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를 완성했는데, 이 때 하늘을 보면 전반적으로 별무리가 회전하듯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고흐가 회전상 어지럼으로 인해 왜곡된 시각을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고갱과 심한 다툼을 하고 귀의 일부를 자해한 사건'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이명으로 귀를 잘라내 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거나 이 위대한 화가는 살아 생전에는 단 한편의 작품만을 판매할 만큼 가난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고, 평생을 병과, 그것도 오진으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으면서 그림을 그렸어야 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고흐의 걸작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는 사실은 인류가 이 분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다음으로는 스페인의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년 3월 30일~ 1828년 4월 16일)의 삶을 조명해 보겠습니다. 고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로 18세기 스페인 회화의 대표자로 그때까지 주류였던 고전주의의 경향에서 벗어서 인상파적인 요소를 강조한 작품을 남겨 이후 에두아르 마네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준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야는 1786년부터 왕가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1789년에는 정식 궁정화가가 되어 금전적으로도 풍족하고 존경받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1792년 콜레라에 걸려 고열에 의한 양측 귀의 심한 내이염으로 전농 및 심한 이명이 발생하고 나선 세상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급기야 1819년 이른바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으로 불리는 저택(전 주인이 난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을 구입하고 은둔의 시간을 가지며 이른바 '검은 그림'으로 불리는, 생전에는 발표하지 않았던 어두운 그림들을 그리게 됩니다. 그 중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르누스'라는 작품에서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경과 계절의 신 사투르누스가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자식을 잡아먹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이 당시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 군의 폭력을 비유하여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기에도 매우 섬뜩하지요?

 

이렇듯 잘나가는 궁중화가로 지내면서 화려한 왕족의 모습들과 아름다운 여체를 묘사하던 화가가 난청과 이명으로 괴로움을 겪으면서 화풍이 극적으로 음울하게 바뀌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난청, 이명 환자들을 진료할 때마다 그분들의 고통과 힘든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의 동양화가인 김기창(1913년 2월 18일 ~ 2001년 1월 23일)데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만원권의 인물인 세종대왕을 누가 그렸는지 아시는지요? 바로 김기창 화백입니다. 사실 세종대왕은 어진(御眞)을 소실했기 때문에 김기창 화백의 상상으로 그렸는데, 자신의 얼굴을 모티프로 그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김기창 화백 역시 8살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하였으나,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에 의해 동양화가의 길로 들어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비록 시대적으로 불운(일제 강점기)한 시기에서 저지른 친일 행적은 많은 비난을 받지만, 본인만의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으로 힘차고 동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많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일명 '바보산수'라가 불리기도 하는 ‘ 청록산수'는 노년의 김기창 화백이 스스로 창안한 화풍으로 세밀한 표현을 과감히 생략하고 단숨에 거침없이 그려내어 웅장하면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비록 청력을 잃어서 세상과 단절되어 살았지만, 작품들이 보여주는 강한 생명력과 동적인 이미지를 생각할 때, 신체적인 불행이 전적으로 정신세계를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감상하고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많은 작가들의 고뇌와 영감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안중호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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